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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훈 주교의 생태 칼럼_ 성서신학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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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choism0512 댓글 0건 조회Hit 193회 작성일Date 21-12-23 19:19

    본문

    이용훈 주교의 생터칼럼

    성서신학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



    ​만약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다 '부시마스터'(bushmaster)로 불리는 살모사를 만난다면 당장 그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몸길이 3m, 이빨 길이 2.5cm에 달하는 이 뱀은 인간을 20분 내로 사망시킬 수 있는 맹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뱀을 만나면 대부분 사람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뱀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무지개 색깔의 영롱한 비늘은 햇빛을 받으면 찬란한 빛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반짝이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뱀의 유혹 이야기의 전형이 바로 남아메리카의 독사, 부시마스터가 아닐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올해 1월 1일 제 54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창조에 관한 성경이야기로 시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덴에 꾸미신'(창세2,8 참조) 동산 하나를 아담의 손에 맡기시고 "그 곳을 일구고 돌보는"(창세2,15)  임무를 맡기십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땅을 기름지고 비옥하게 만든다는 의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실을 맺는 땅을 보호하며 생명을 지탱해 주는 땅 자체를 아끼고 존중한다는 의미 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평화스런 지구촌과 평온한 인류의 삶을 깡그리 뒤엎고 얼룩지게 한 코로나19사태는,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우리가 서로 진정한 나눔을 실처나면서 생태적 회개의 삶을 지금 당장 살아야 하는 절박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황 성하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도 '평화의 길인 돌봄의 문화'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에덴 동산을 일구고 돌보는 임무를 받았음에도, 상징적 서술이지만 뱀의 유혹에 빠져 마침내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곧 인가의 탐욕과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인 것입니다. 마치 아메리카의 독사 부시마스터의 화려함에 빠져 죽음의 길로 빠져든 것과 같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당부하신 대로, 우리는 이제 그 유혹에서 빠져 나와 읻웃과 자연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돌봄의 문화는 오늘날 매우만연해 있는 무관심과 버림과 대립의 문화에 맞서 싸우는 길이 됩니다. 이 싸움을 다른 말로 하면 '공동 투신'입니다.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신 돌봄의 문화는 모든 이의 존엄과 선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연대하고 참여하는 공동 투신입니다. 또한 관심을 보이고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가짐, 연민과 화해와 치유의 마음가짐, 상호 존중과 환대의 마음가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올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신년 메시지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적 회개는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 교회의 모든 사목분야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남은 '엔덴동산 지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환경보호가 아닌 하느님의 뜻이 따르며 형제와 지구환경을 지키는 신앙 행위입니다. 그 신앙의 결핍이 오늘날 코로나19의 고통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이 자연환경과 녹지공간을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훼손하며, 단순한 소유물로 보고 함부로 다루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이탈하여 병들게 한 결과로, 지구의 온난화, 이상기온, 기후변화와 함게 찾아온 우리 인류가 스스로 자초한 재앙입니다. 우리는 힘 있는 기업이 주도하는 개발사업에 희생되는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 현장을 보면서도 자연환경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통회하고 보속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기후 위기와 어머니 지구의 울부짖음은 우리 천주교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복음화 사명과 사목활동의 매우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돌봄'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돌봄은 사랑이니다. 돌봄은 희생입니다. 돌봄은 투신입니다. 특히 '돌봄'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수은을 손으로 꽉 쥐고 있다면, 흘러내려 버릴 것입니다. 수은을 쥘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손바닥을 넓고 반듯하게 펴는 것 뿐입니다. 주먹을 꼭 쥐어 그것을 잃어버리듯이 우리는 돌봄을 핵심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손을 움켜쥐는 것은 부질 없는 욕심입니다. 그 욕심을 내려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 그리고 생명과 동행하는 참 행복, 참 평화의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뱀의 화려한 유혹에 빠져 아담은 에덴동산을 돌보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며 그곳에서 쫒겨나는 처지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메리카의 독사 부시마스터의 화려한 유혹은 우리를 죽음의 길에 이르게 합니다. 마지막 남은 '에덴동산 지구'에서 추방당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평화의 길인 돌봄의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출처_ 월간 비타꼰 2021.4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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