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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훈 주교의 생태 칼럼_성서신학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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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choism0512 댓글 0건 조회Hit 204회 작성일Date 22-01-08 18:54

    본문

    이용훈 주교의 생태 칼럼 

    성서신학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환경(3)


    기쁨의 역사 수레바퀴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참 좋다"며 기뻐하셨습니다(창세 1, 31 참조).


    그 기쁨이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웃는 인간을 증언한 인류 최초의 기록은 성경이며(창세 18, 12; 21,6) 그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그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았을 아브라함도 참 기쁨으로 충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외아들 이사악도 하느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불어나게 하고,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겠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6, 4). 이때가 기원전 2000년경입니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 탈출에 성공해(모세가 주도한 파스카 사건) 완전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간 유다인들은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겁니다. 유다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발을 구르며 환호했습니다(탈출15,1-21 참조).


    또 기원전 1000년경,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계약 궤를 옮겨 안치한 다윗 임금은 기쁘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두고 사무엘 하권은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1역대 15, 29 참조)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뒤에도 기쁨의 역사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 28)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들판의 목자들은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2, 10)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소식으로 세상에 온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스스로 기쁨 한가운데 머물렀습니다.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요한 11, 15). 그리고 참 기쁨을 온 누리에 선포하십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 24).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은 참으로 인자하십니다(마르 10, 21 참조). 그 평화로운 시선이 개인주의나 물질주의의 감각적 기쁨이 아닌, 선포하는 참 기쁨의 한가운데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그분의 현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그 '참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소명에 동참해 달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호소하십니다. "볶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그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복음의 기쁨 24항).


    하느님께서는 창조 후 당신 피조물을 기쁨 속에서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땅에서부터 생명을 주는 물에 이르기까지, 열매를 맺는 나무에서부터 우리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이런한 피조물을 인간에게 소중한 선물로 주시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그 기쁨에 동참하는 응답이 아닙니다. 죄와 이기심과 소유하고 착취하려는 탐욕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자기중심주의와 사리사욕 때문에, 만남과 공유의 자리가 되어야 할 피조물은 극도의 경쟁과 분쟁으로 치닫는 각축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쾌적한 환경 자체가 파괴되어 뿌리째 흔들리며,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기뻤던 그 좋은 것이 이제 인간의 손에 착취당하며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창조의 기쁨 속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어쩌면 다른 피조물이 눈물 흘리도록 한 것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은 사람의 착취행위에 어김없이 재앙으로 보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환경 훼손은 더욱 더 심각해졌습니다. 계속되는 오염, 화석 연료의 지속적인 사용, 삼림 파괴로 지루 온동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미세 플라시틱의 해양 유입도 위험수위를 넘었습니다. 지구가눈물을 멈출 때 우리도 눈물을 멀출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 기뻐할 때, 우리도 창조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창세 1,27 참조)로서 공동의 지에서 형제자매로 '기쁘게'살아가라고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눈물을 불러오는 폭군이 되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쁨의 협력자로, 환경의 충직한 관리자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2019년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인류 가족의 구성원은 저마다 가늘지만 유일무이하고 꼭 필요한 한 가닥 실이 되어 모든 이를 감싸 안는 생명의 그 물을 엮어 나가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후 하느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쁨의 역사 수레바퀴는 멈추지않고 계속 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활기찬 동력이 필요합니다. 기쁨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성모님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에 기쁨으로 함께합니다.


    "살아 있는 기쁨 소식의 어머니, 작은 이들을 위한 기쁨의 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알렐루야!"(복음의 기쁨 288항).


    월간 가톨릭 비타꼰 2021 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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